플라멩코 살아요



'너무 나이 들어 하면 무섭다'는 내 마음대로의 편견으로 마흔을 코 앞에 두고 플라멩코를 추고 왔다.
사실 뛰어난 플라멩코 댄서들의 나이는 나보다 훨씬 많기도 하다.

마침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여름에 50% 할인하길래 어쩔 수 없이 구매한 '이건 플라멩코를 위해 태어난 옷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드레스가 옷장에 걸려 있어서 고민 고민하다 (초보인 주제에 복장이 과한 것 같아) 입고 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구두를 신고 오라는 플라멩코 선생님의 노트에 세비야에 온 김에 구두 하나를 마련하자 싶어 아침부터 플라멩코 슈즈 찾기 미션에 들어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굽의 구두는 평소에 신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다. 게다가 춤추는 신발이라면 갖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처음 간 신발 가게에서 민트색 플라멩코 슈즈에 반해버린 에딘, 다섯 살은 되어야 신을 수 있는 사이즈가 가장 작았지만 여행 중에 신을 편한 플랫슈즈를 사라는 아빠의 말은 무시하고 플라멩코 슈즈만 만지작거렸다. 반드시 갖고 싶은 표정을 세 살도 안 된 아이가 짓는다. 백화점 같은데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그래, 에딘도 가져. 다섯 살 되면 또각또각 춤을 추렴.

귀여운 아이들을 위한 관광객용 제품은 거리 곳곳에 있었는데 성인용 플라멩코 슈즈는 의외로 찾기가 어려웠다. 구글맵을 들고 세비야 시내를 뛰어다니고 네 군데 신발 가게에 물어서도 못 찾은 것을 어쩌다 찾았다. 처음 찾은 가게에서 붉은색을 살까 핑크색을 살까 고민했는데 내 사이즈는 검은색도 없었다. 마지막에 우연히 찾은 코르도바 거리의 가게에서 첫 가게보다 10유로나 낮은 가격에 파는 슈즈를 찾았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색도 보인다. 

스페인이고 세비야고 플라멩코니까 붉은색을 사는 게 합당한 것 같은데 태어나 사 본 구두 중 가장 과감한 붉은 색의 구두는 이미 우리집에 살고 있다. 빨강으로 할까 분홍으로 할까 고민하다 초록으로 달라 했다. 기쁘게도 내 사이즈가 있었다. 

드디어 수업 시간.
춤을 춘 건 고작 한 시간 정도에 불과했지만 어떤 춤인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동작은 없었고, 빠른 동작은 당연히 배우지 못했다. 1시간 반의 수업 중 25분 가까이 이어진 플라멩코의 역사 이야기와 박자, 박수, 템포 연습은 플라멩코 공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분.명.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동작과 스텝을 더 많이 배워보고 싶었다. 여행자이므로 깊이 배우기엔 무척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녀가 건넨 붉은 장미와 숄이 즐거웠다. 
난 이미 붉은 치마를 입고 있으니 어깨에 두르면 된다 했다.

세비야에서 태어나 평생 플라멩코를 춘, 좋은 목소리를 가진 열정적인 에바에게 정통 플라멩코와 시작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Ole!










덧글

  • Po 2019/03/24 20:13 # 답글

    점점 종합 예술인이 되어가시는 군요~
    유튜브로 플라멩코 동영상을 봤는데 탭댄스 같기도 하고 되게 흥겹네요 ㅎ
  • 지나 2019/03/25 04:34 # 삭제

    앜ㅋㅋㅋ 지금 저더러 홍서범이라 하셨슴까 ㅋㅋㅋㅋㅋ
    맞아요 탭댄스 같기도 하고, 함께 노래하는 분들은 판소리의 창법도 쓰시더라고요. 순간 난 동영상을 올리지 않고 캡쳐만 했을 뿐인데... 생각하며 흠칫했어요 ㅎㅎㅎ
  • Po 2019/04/01 22:42 #

    홍서범이라뇨 ㅋㅋ 플라멩코가 지나님 분위기랑 잘 어울릴것 같아요 ㅎ 열정적인 느낌같은거?
  • 더카니지 2019/03/26 10:02 # 답글

    제목만 보고 순간 새 플라밍고인 줄 알았습니다 ㅋㅋ 다섯살 아이용 플라밍코 슈즈도 있다니 과연 열정의 나라 스페인! 나중에 에딘이가 좀더 크면 지나님이 직전 플라멩코를 가르치시겠군요!! ㅎ 붉은 색 장미와 숄이 정말 너무 잘 어울리시고 예뻐요!! 열정과 관능의 플라멩코 댄스에 정말 잘 어울리는 패션인듯! ㅎㅎ
  • Jl나 2019/03/26 19:31 #

    칭찬 교과서를 읽는듯한 이... ㅎㅎㅎ 고마워요 카니지님, 참 즐거운 곳이었어요.
  • TokaNG 2019/03/27 11:18 # 답글

    만화 아기와 나 대사중에 플라멩코랑 플라밍고를 헷갈리는게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플라멩코라는 단어를 보면 플라밍고가 먼저 떠오르는...
    근데 플라밍고를 보고 플라멩코가 떠오르진 않아요. 플라멩코가 어떤 춤인지 모르니까. ㅋㅋ
  • Jl나 2019/03/27 17:00 #

    진짜... 둘은 왜 이리 비슷한 이름일까요 ㅎㅎ 전혀 다른데 ㅎㅎ 스페인이 잘 알려진 것 같은데 우리가 모르는 부분도 많더라고요. 아랍 문화나 집시 문화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오스트리아랑 오스트레일리아 헷갈려서 호주라고 더 많이 쓰는 게 아닐까... 라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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