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해야 하는 일 살아요



친절한 분이 소개해 주셔서 가입하고 새로 시작한 공간이 있는데 영 쑥스럽다. 

오랜만에 또 전학생이 된 기분이다. 


"간단히 자기 소개해 주세요."

"네, 저는 어디에서 온 누구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도에서 그쳤다가 신입생이 되니까 

"무슨 과 무슨 학번 누구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정도로 원한다면 간단명료할 수 있었던 게 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학생 딱지를 뗀지 오래 되고 나니 

"안녕하세요, 누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되는 자기 소개이다. 



그러다 정말로 내가 어떤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어떤 것을 만들고, 어떤 것을 만들고 싶은지를 처음부터 소개하고 설명해야 하는 일을 

다시 하려니까 되게 쑥스럽다. (그게 하기 싫어서 계속 이글루스에 있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사람들은 남에게 자신을 소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익숙해졌다가 

달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에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신선하겠다. 

경우 없는 이라면 '아니 내가 누군지 몰라?' 태도로 나가겠다. 

조금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면 위험하다. 



그러니까 지금의 쭈글시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야 하는 일이 참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말이나 몇 줄의 표현으로 부족해서 이미지나 사진으로 표현한 적도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끌어모으기도 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설명을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 보여주지는 못 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들도 서로를 이해하는 정도가 그리 깊지 못할 때가 있다. 

엄마는 아마도 80프로 정도는 알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낀 적이 몇 번 있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 나를 설명하는 일이라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었는데 

나를 오래 봐 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황송한 일이다. 





포트폴리오나 입사 원서, 이력서 같은 것은 "진지"해야 하며 

모든 상대를 "낯선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해야 한다. 

구구절절해서도 안 되고, 불충분해도 안 된다.

납득 받으려면. 




그러고 보니 

국민학교 1학년 때 50명이 넘는 모르는 애들 앞에서 손가락을 물며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뗀 게 

현재의 나를 소개하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어. 










덧글

  • L君 2018/07/25 12:56 # 답글

    저도 그런 상황이 참 어렵더라구요 :)
  • Jl나 2018/07/25 14:59 #

    그쵸... 근데 안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쵸 ㅎㅎㅎ
  • 미남 2018/07/25 21:17 # 답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 그렇습니다.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노력해야죠.. (라며 저는 위안 삼습니다.)
  • Jl나 2018/07/25 22:24 #

    그렇군요... 이해 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로군요...
  • 미남 2018/07/27 22:20 #

    암요.. 그래서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삽니다.
  • Po 2018/07/25 23:09 # 답글

    자기소개 힘들어요.
    그걸 할 때 마다 나의 삶에서 특별히 말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든요.
  • Jl나 2018/07/25 23:16 #

    그럴리가요... 포님은 오래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분 같은 걸요. 깊이가 느껴져서요.
  • 2018/07/30 23: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7/31 04: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션이다 2018/08/15 16:05 # 답글

    어딘지 또 찾아가봐야겠넵 ㅎㅎ
    다시 연애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느낌 같은거면, 좋겠답 ㅎ
    새로운 곳이라도,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서 어색한 소개팅 하는 느낌보단 낫겠지. ㅋㅋㅋ
  • Jl나 2018/08/15 16:40 #

    늙어서 알아가는 과정이 귀찮지. ㅎㅎㅎ 8년간 떠들떠들한 곳에도 다 못 풀었다. 싸이는 한 10년 했던가... 이건 대단한 스토킹 정신이 아니면 인간을 이해하기 어려워. ㅎㅎㅎ

    오래 인연을 이어주니 고맙구먼.
  • 션이다 2018/08/15 17:36 #

    나야 말로~ㅎ
    그런 의미에서 던서방이 너에게 참 소중한 존재같다. ㅎㅎㅎ
    항상 곁에서 널 잘 알아주는 던서방도 고맙고~
    나도 너에게 고맙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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