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다가올 널 위해 No Music, No Life




곡에는 장소가 묻어나고, 추억은 배경 음악으로 더욱 미화된다. 

엉뚱하지만 내겐 멕시코를 의미하는 곡이다.
 

매일 아침, 택시 아저씨와 실랑이하고, 학생이란 이유로 

다섯 명이 끼여 타는 억지를 부리며 학교로 향했다.


다섯 명이 "정액"을 내면 버스를 타는 것보다 저렴했기에 그렇게 했다. 

물론 택시 기사 다섯 중 네 명은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수도보다 많이 점잖고 잘 사는 동네였음에도 그랬다.


하교하는 길은 혼자가 편했다. 

성격이 유난히 잘 맞는 친구들과 홈스테이를 한 것도 아니고, 모두 스무 살 풋내기들에, 

정부와 학교에서 지원해 준 덕분에 간 첫 해외 여행이었고, 

스페인어는 고작 현재형만 알았기에 온몸을 사용해 멕시코인들과 소통했다.

싸울 때는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유난히 걸음이 빠르기도 했고, 우루루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아이들은 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호스트 마마네로 돌아가는 길은 대부분 혼자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귀엔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타이트한 청바지였는지 가방 주머니였는지엔

(아마도 청바지 주머니였을 것이다. 소매치기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던 때였으니까.)

소니의 최신형 워크맨이 들어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멕시코 친구가 매우 탐내던 날씬한 모델이었다. 

카세트 테이프의 크기보다 아주 조금 컸다. 

멕시코에 보이는 워크맨들은 매우 뚱뚱했는데 그걸 자랑스레 보여주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밀레니엄의 종말론적인, 또는 축제적인 분위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2000년의 초였고, 

나는 스무 살 생일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고, 거리에 동양인은 매우 드물었다. 

단 하루도 휘파람 소리나 츠츠거리는 븅신 남자들의 귀찮음을 겪지 않은 날이 없었던 때였고, 

마침 쫄티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내 통통한 몸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래서 더욱 귀를 막고 걸었던 것 같다. 

귀찮은 것들의 소리가 들려도 무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가져간 테이프는 하나뿐이었던 걸까?


내내 김건모의 목소리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내겐 어떤 그의 앨범보다 소중하다. 


이 곡 도입부의 사각거리는 소리는 날 언제나 

스무 살이었던, 두려움과 호기심이 많았던 내가 

마른 잎들을 밟으며 걸어가던 

멕시코로 데려간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