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기타 수업이 끝났다 살아요





2월부터 시작된 기타 수업이 끝났다. 

부활절 한 주를 쉬고 11주에 걸쳐 진행된 수업이었다. 

수업은 어떤 고등학교의 도서관에서 진행되었다. 

어린 학생들이 떠난 자리를 어른들이 채우는 기분이 묘했는데 

따로 다른 건물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되었다. 

6시 반에서 7시 반까지 진행되는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중 나는 가장 어린 것 같았다.

그 다음 수업 시간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엔 수녀님도 있었고, 십대 학생들도 있었는데 

내가 참여한 수업에는 4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분들이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 부담이 없었다. 


나보다 조금 어린 조카들을 가진 기타 선생님은 열정이 넘쳤고,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모두 피아노를 배울 때 음악 선생님을 거의 

괴롭히다시피 해서 혼자 기타를 배웠다고 했다. 


음악을 놓고 싶지 않아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기타 치는 방법만 배우게 될 줄 알았던 수업이 노래도 당연히 함께 시키는 분위기여서 놀랍고도 즐거웠다. 

세간의 통념과 달리 멀티태스킹에 능하지 않은 여자에 속하는 나는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이 

영 불안했다. 이도 저도 못할 것 같았다. (정말 아직은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학생이 되어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눈에 띄고 거슬리는 학생일 수 있는지 실감했다.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딴청을 피우고 나도 모르게 시계에 눈을 돌리는 버릇이 있었다. 

선생질을 10년 한 입장에서 그런 학생이 곁눈으로도 잘 보인다는 걸 모를리 없는 내가 그러고 있었다. 

도전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와 좀 다르다 싶은 가르침엔 

굳이 이견을 제기하고 싶었는데 초보인 주제에 말이 많은 것 같아서 어릴 때와는 다르게 ㅋㅋ 입을 닫았다.


어린 시절의 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 학생이었지만 매우 당돌하고 도전적이기도 한 학생이었다. 

모범생이었다가 공부를 놓았다가 다시 하다가를 반복했지만 학교는 거의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던 수업은 음악, 미술, 영어 뿐이었다. 가끔 국어와 일어에 집중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지만 어떤 날엔 정말 그림이 싫고, 붓을 던지고 싶은 날이 찾아오는 걸 느끼며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구나 했다.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피아노를 썩 잘 치지 못했고, 악기를 제대로 배우는데 필요한 돈은 살다보니 없어졌다. 

예술고에 진학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집에 돈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고, 

결국 그게 영어가 되었고, 그 때의 선택은 지금도 옳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몇 달 전에 본 영화에서 "예술은 돈 있는 자들의 놀이다"라는 투의 대사가 나왔다. 

미술가나 음악가가 되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그 일을 하면서 넉넉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그치고 만다. 

그 일을 하면서 굳이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부모가 돈이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를 갖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예상했던 대로 나오지 않는 결과물에 놀라기도 하고, 잃었던 것을 되찾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굉장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재료를 사야 하고, 물을 받고, 자리를 깔고, 물감을 짜고, 스케치를 하고, 붓질을 하고, 걸레를 더럽히고, 

한 번에 완성되지 않으면 다시 그 일을 반복해야 하고, 주변은 너저분해지기 일쑤고, 뒷정리도 귀찮다. 

한 마디로 펼치는 게 큰 일이다. 


쪼끄만한 아기가 주위에 돌아다니는데 하기엔 영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하고 싶어하는지도. 


늘 커어어어어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게 로망이었는데 

딸아이에게 들켜버려서 생각지도 못했던 추상화를 함께 완성했다. 

엄마가 붓이나 물감을 쥐면 자기도 반드시 쥐어야 하는 귀여운 아기라서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리고 싶었던 그림은 못 그렸다. 



다시 커어어어다란 캔버스를 큰 맘 먹고 샀는데 그게 무려 37유로나 했다. 

백지가. 아직 아무것도 안 그렸는데. 

그 커다란 백지를 채울 물감 값과 붓 값까지 생각하면 현실적인 사람은 선뜻 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렇게 돈을 들여 하는데 잘 완성되리란 보장도 없는 일이니까.





20대 때 로마에서 작지만 잘 그린 손바닥만한 화가의 그림 가격을 흥정해 보려다가 

그의 "이거 이 가격이면 물감 값도 안 나와요"라는 말에 달라는 돈을 줬던 기억이 있다. 

그리 큰 돈이 아니었다. 10유로, 15유로 정도였을까?

트래비 분수의 그림이었으니까 그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닐 터였다. 

관광객들에게 "팔리는" 그림을 그렸겠지. 

생활을 위해 같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우리집 게스트룸에 앉아있는 분명히 프로인 그의 그림을 보면서 

화가로 사는 그의 마음이 어떨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부자라서 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 

가난해도 되어서 화가가 된 게 아닐까. 


   


다시 기타로 돌아가자. 

첫 기타 수업을 듣고 기뻐서 그림을 그렸다. 이상하게도. 


한 주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버렸다. 

한 곡의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거의 매주 검사를 받아야 했다.  

"우리는 성인이고 모두 직장이 있으니 어린 학생들과 달리 악기를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하루에 몰아 몇 시간을 연습하려 하지 말고 매일 10분간 연습을 꼭 해라. 그게 훨씬 효과적이니까."

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며칠 연습을 안 하면 손가락이 자리를 더디게 기억했다. 

10회의 수업이 끝난 지금까지 11주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총 20시간의 연습을 못 한 것 같다.

생활의 핑계로. 

아직도 기본 코드들이 한 번에 잡아지지 않는다. Muscle Memory를 길러야 한다는데 방법은 연습 뿐.

'그런데 왜 연습을 해야 하나? 내가 기타를 잘 쳐서 무얼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실력은 안 는다. 

'돈벌이가 아닌 실력을 왜 늘게 해야 하나?'

이런 현실적이고 비로맨틱한 생각이 들어서는 게 어른의 시시함이다. 

아이들은 그냥 무언가의 실력을 쌓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니까. 



다음 단계 수업에는 참여하지 못할 것 같다. 

혼자 기타를 갖고 노는 시간과 내가 몰랐던 수많은 곡들을 하나씩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고급까지 가는 건 무리지만 혼자 중간까지 가는 건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천천히. 느리게 알고 싶은 곡들을 즐겨야지. 

현란한 테크닉이나 눈에 띄는 연주법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좋아하는 곡을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수 있게 해주는 정도에 만족한다.

노래를 외롭지 않게 해주는 도구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