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났어요 살아요




잠시 죽었다가 살아났어요. 

역시 현대 의학의 힘은 대단합니다. 

약 계속 먹고 하루 지나니까 목소리가 나왔어요. 

입을 벌릴 수 있었어요.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침을 삼킬 수 있었어요. 

양치질을 제대로 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가능한 게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픔의 교훈(?)인가 봅니다.

걱정해 주시고 따뜻한 댓글 달아주신 이웃님들께 감사합니다. (--)(__)(--) (--)(__)(--)






<다시 혼자 정색 모드>



눈보라가 지나가고 슬러시가 된 눈들을 밟고 GP에게 갔다. 

원래는 예약을 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가는, 한국처럼 그냥 무작정 가서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은 

가정 의원이라 봐 주겠지 싶었다. 

문을 여는 시간보다 십여 분 일찍 도착했다. 이미 세 명의 환자가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한 의사 선생님은 대기실을 따뜻하게 데워두는 걸 잊지 않았다.



How are you Gina? 하는 선생님의 물음에 답을 잘 하지 못했더니 매우 불쌍해 하셨다. 

아스피린은 안 되고, 수유하는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편도선염 약을 찾는 건 어려운 것 같았다. 

책을 뒤져보고 확인해 본 후에야 처방전을 쓰실 수 있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한국에선 아예 처방과 조제를 거부한 분도 있었다... 

(당시엔 "페니실린도 알레르기가 있나?"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으므로

참 의학계에 몹쓸 몸이라는 말도 들었다. 

현대 의학의 대발견(아스피린, 페니실린)을 거부하는 몸이라곸ㅋㅋㅋ)



페니실린도 알레르기가 있나? 라고 고개를 갸우뚱한 1인 의사의 의문의 들리는 혼잣말 때문에 

치료를 거부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스피린은 확실히 부작용이 있는데 

(-> 두 눈이 벌에 쏘인 듯 퉁퉁 붓는 실로 무시무시한 부작용, 본 사람들이 정말 경악함) 

페니실린은 부작용이 없다(없...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약(페니실린이 들어있다고 껍데기에 무섭게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과 

진통제(파라시타몰은 이제 별 효과가 없다 했더니 의문의 약을 받았는데 껍데기에 졸릴 수 있다는 

경고가 붙어있다. 약 먹고 졸리면 운전을 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일을 하지 마라! 

라고 디테일하게 쓰여있다.



나는 나를 실험한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약이 필요하다, 나는 애를 봐야 하고 놀러가야 하므로 

입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억지로 약을 삼켰다. 밀어넣었다. 

알약과 물을 삼키는 것도 고통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약 기운이 돌기 전에 스파에 도착하기로 했다. 

그런데 와우... 천천히 차를 몰며 30분 쯤 지나자 온 몸이 노곤노곤, 머리가 휘청휘청... 

약에 취한다는 게 이런 것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느꼈다. 

아기가 먹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먹어서 좋을 게 없다는 약이 맞구나 싶었다. 

약을 많이 먹어야 하는 첫째, 둘째날은 젖 대신 물을 주라고 권하셨다. 


스파 앞에 도착한 후에도 한참을 차에서 나가지 못했다. 

거울을 통해 얼굴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걸 보고 안도했다. 







그렇다. 내 몸은 페니실린은 거부하지 않는다!!! 







그렇게 용기 있는 내 몸에의 실험 후 나는 안도감과 배신감을 온 몸으로 느꼈다. 


내가십몇년전에만난썩을쭈그렁방탱이가될의문의의사죽을래너때문에평생약못쓸뻔했잖알머;ㄴ이라ㅓㅁㄴㅇ;리ㅏㅁ ㄴ




Anyhow,


난 그토록 고대하던 마사지, 그것도 비싼 마사지, 남편이 특별한 날에만 선물해 주던 스파 마사지를 받았다.

세계적인 마사지(이것도 언젠가 정리가 필요하다)를 받아본 ex-허리병신인 나는 

마사지사님들의 능력을 잘 평가하는 편인데...


이곳에서 만난 아일랜드 마사지사님의 손길은 강하고 야무진 것은 아니었지만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같은 이를 만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여하튼 실력이 나쁜 사람을 

고용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약에 취하고 병에 취한 나는 따뜻한 돌침대 같은 라운지 체어에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그녀를 만났다. 

악수를 건네는 그녀의 손도 제대로 못 잡고 수건 같은 걸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어디가 아프냐? 어떤 강도를 원하냐는 질문에 겨우 대답을 하고 

(그냥 다 아프고 엄청 피곤해요. 센 마사지도 익숙해요. 중간에서 센 사이면 괜찮아요)

기절했다. 


사려깊은 그녀는 더 이상 내게 말을 시키지 않았다.

한 시간의 침묵 속에서 치유의 손길이 닿았다. 

사람이 사람을 만지는 것,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해 다른 이를 낫게 하려 애쓰는 손길이 

온 몸 구석구석을 휘감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은 하나도 없었고, 부끄러울 수 있는 부분에는 

거의 손이 닿지 않았다.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거의 2년만의 마사지였다. 




약과 진통제를 두 번 먹어서였을까... 좀처럼 라운지에서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딸을 데리러 가야 하는데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자꾸만... 자꾸만...


월요일이어서였는지 몇 십분 후 라운지에는 나 혼자만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무심코

코를 골까봐 ㅋㅋㅋ 그곳에서 잠을 잘 수는 없었다.


눈을 감고 애플 주스를 찔끔찔끔 마시고, 요거트를 밀어넣고, 

포도알도 으깨 먹고, 멜론도 토끼처럼 갉아먹고, 평소에 볼 일이 전혀 없는 골프 잡지를 뒤적이고, 

피드백 엽서를 작성하고, 눈을 감되 잠들지는 않으려 노력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아는 가장 느린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 


이렇게 느리게 움직여 본 게 얼마만인가... 





남편에게 저녁을 할 기운이 없을 것 같으니 저녁을 알아서 먹어달라는 문자를 보내고

닭백숙을 자신이 할테니 방법을 알려달라는 그의 말에 통닭을 사려고 마트 앞에 차를 댔다. 

아이스크림은 먹을 수 있으니까 먹었다. 

평소엔 아주 좋아하는 살찌는 초코 아이스크림인데

(발음을 잘하지 못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직원이 딸기맛을 건네 미안했다. 

미안하지만 돌려보내고 다시 받았다. 난 딸기쨈이 발린 아이스크림은 싫다.)

그것도 다 먹지 못해 '와... 내가 정상이 아닌 게 맞구나' 싶었다.


그때까지 페니실린이 든 약을 두 알, 진통제를 세 알 정도 먹은 것 같다. 

그 약들의 파워를 몰랐던 것이다.


마트에서 겨우 물건들을 집어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온 세상이 돌았다.

나도 돌고 점원도 돌고 오렌지 주스도 돌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여보, 난 안 되겠어. 스타 좀 픽업해 줘. 난 그 아이를 들지 못할 것 같아. 다리에 힘이 없어. 

겨우 서 있어. 저녁도 되었어. 난 그냥 잘게.'



마트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25분, 머리는 이 상황에선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마 경찰 아저씨에게 걸리면 잡혀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집에 가야 한다. 집에 들어가서 이불에 기어들어가야 한다. 

난 우리집에서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자고 싶드아................



그래서 차 안에 있던 껌 두 개를 우걱우걱 씹었다. 

다행히도 이젠 껌을 씹을 수 있었다. 껌을 씹을 수 있을 정도로 고통은 사라졌다. 

일부러 딸이 없으면 절대 틀지 않는 동요 CD도 크게 틀었다. 

'너는 애미니라. 그러니까 사고를 내면 안 되니라. 정신을 차려라.'

를 생각하며 핸들을 꺾었다. 



그렇게 우걱우걱 씹은 껌의 강력한 민트향과 CD에서 뿜어져 나오는 동심에 취해 

난 잠을 이겨낼 수 있었다. 딱 25분간. 



집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린 나는 그에게 쓰던 메모의 끝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옷도 엉망으로 벗고, 들고 있던 식료품이 든 가방도 마루에 팽개치고, 그대로 이부자리에 들어갔다. 



그렇게 15시간을 잤다. 

그는 처음으로 딸과 함께 잤다. 













그렇게 나는 부활했다. 






덧글

  • 아이리스 2018/03/07 19:02 #

    지나님 수고하셨어요!! 나으셔서 다행이에요ㅠㅠㅠㅠ 읽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ㅠㅠ 아프고나면 가뿐하게 몸이 한차례 정화된 느낌이죠...회복 잘 하시고 예쁜 봄 맞이하세요 :)
  • Jl나 2018/03/07 19:25 #

    ㅎㅎㅎㅎ 이제 창문을 열어도 안 추우니 살 맛 나네요! 오예!! ㅋㅋㅋ 아니 난 웃기려고 쓴 건데~~
  • 2018/03/07 19:2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7 19:52 #

    그렇군요! 역시 세상사 시각의 차!! ㅋㅋㅋ

    마사지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또 코믹 버전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언젠가 쓰겠습니다.
    그러게 사람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상당히 고된 일인 것 같은데 좋아하는 분들이 있고 그렇게 재능을 살리는 분들도 꽤 되는 것 같아서 오호!! 했어요.
  • 2018/03/07 23:1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8 01:50 #

    그쵸... 근데 너무 집에 가서 자고 싶어서... 택시 번호도 몰랐고요 ㅎㅎ

    화학요법에 알러지가 없기도 어렵지 않은가 싶어요. 사람마다 몸이 다르니까...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 점장님 2018/03/07 23:17 #

    지나님 이제 괜찮으세요?
    그래도 듣는 약을 하나 찾아놔서 세상 다행이네요
    다음엔 집에 와서 드세요 ㅎㅎ
  • Jl나 2018/03/08 01:50 #

    그러게 말예요. 다음날엔 무서워서 페니실린약만 먹었는데 그것도 졸리더라고요. 약 먹으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약이었어요 ㅎㅎ
    이제 까불까불해요 다시 ㅎㅎㅎ 감사합니다.
  • 2018/03/08 01:03 # 삭제

    고생 마이 했겠네. 나도 편도선염 때문에 수술하고 입원했었던 적 있는데 밥도 못먹고 침도 삼키기 힘들고 할 일 아이드라.
    이제 좀 나아져서 다행이넹. 푹 쉬라
  • Jl나 2018/03/08 01:51 #

    은근히 수술했다는 사람이 많군. 그렇군. 아이고 무시라...
    살이 쪽쪽 빠지는 그런 병... 안타깝게도 3키로밖에(..) 안 빠지는 결과가 나왔는데 몸보신한다고 다시 먹으면 도로 쏴악~ 찔 분위기라 22일 다이어트는...


    ....
    ....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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