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살아요



목소리가 안 나온다.

내 목소리가 안 나온다. 발음을 똑바로 하려고 하면 아프다. 입을 포도알 크기보다 크게 벌리면 아프다. 

사흘인 줄 알았던 몸살은 일주일로 이어지더니 목이 아픈 것이 2주, 3주가 지나도 낫지 않았다. 

평소에 건강한 사람들은 이런 이상 징후에 더 약하다. 



오기처럼 2년은 채워먹이겠다고 나 말고 딸을 우선시 하며 살았더니 

피부는 건조해졌고, 탄력이 많이 사라졌고, 한 번 아프면 빨리 낫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한약을 질색해서 보약이나 홍삼 같은 건 줘도 안 먹는다. 

아직도 애 같은 기질을 버리지 않는 걸 보면 아직 덜 아팠나 보다. 



목젖이 있으면 그 양 옆에 공간이 있어야 정상이라는 걸 어릴 때 편도선염을 앓은 이후 알고 있는데 

3주째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파라시타몰, 렘씹, 칼폴 등 수유하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진통제는 다 먹었지만 몇 시간 고통을 마비시킬 뿐 

부은 곳은 전혀 가라앉지 않는다. 


50유로 진료비가 아까워서, 어쩐지 내일이면 나을 것 같아서 하며 계속 미뤘더니 눈보라가 와 

나흘을 집 안에서 갇혀 지냈다.


아픈 아내, 아직 눈을 좋아하지 않는 아기와 함께 하는 남편의 재택 근무도 신나는 것이 못 되었다. 




어느날 아침,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수유 중단을 선언했다. 

강한 약을 먹고 나부터 나아야겠다고, 23개월을 먹였으면 대부분보다 많이 먹인 것 같다고. 

그런데 그가 두려워했다. 아이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쩌냐고, 

자신이 휴가를 내어 나흘 정도 함께 할 수 있을 때까지만 기다리면 안 되겠냐고. 



다 맞는 말인데 언제나 우선순위가 아이가 되는 게 당연한 생활을 몇 년 하다보니 서운했다. 

내가 아파도 아이를 먼저 생각한다. 

내가 그러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편도 그리 생각하는 것은 서운하다.

결혼한 여자는 다른 가족을 돌보는 것이 당연시 된다. 

역시 몸살이 걸려서 너무 너무 아팠는데 물 한 잔 떠달라는 소리도 못했다는 

남자들이랑만 같이 사는 엄마 생각이 나 더 속상했다.



그래도 결국 남편은 레몬을 잘라 내게 내밀었다. 

젖꼭지에 레몬을 발랐다. 예상했던 것처럼 쓰라리거나 이상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습관처럼 버릇처럼 엄마젖을 찾는 딸이 다가오기 전에 몇 번 레몬을 발랐더니 맛을 본

아이가 정말 우스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맛이냐는, 엄마젖이 왜 이러냐는 표정이었다. 

이제까지 맛있고 부드럽던 것이 어느 순간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냄새를 맡고 다른 쪽으로 다가왔다. 


몇 번이나 시고 쓴 레몬맛이 반복되자 아이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칭얼거리더니 젖을 물길 포기했다. 

이렇게 쉽게 뗄 수 있는 것인가 의아했지만 두고 보기로 했다. 


진통제 기운이 돌아 다시 겨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수유 중단을 또 포기했다. 

함께 목욕을 할 때, 밤에 같이 잘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젖을 무는 아이의 모습과 

작별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예정했던 대로 조금만 더 참자. 

다음 달에 그가 휴가를 내고, 나 대신 아빠와 자는 일을 반복하고 나면 자연스레 뗄 수 있겠지. 

그리고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아이의 젖 문 얼굴과 감촉, 체온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기억해 둬야지. 




아이는 어제부터 이상하게도 젖을 찾는 수를 확 줄였다. 

욕조에서, 침대에서는 여전히 버릇처럼 찾는데, 그래서 엄마젖이 돌아왔음을 아는데도 

어제 오늘 낮에는 전혀 찌찌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목욕물을 들고 오면 자러 가야 하는 줄 알고 

자동으로 젖을 물었는데 그것도 하지 않는다.



벌써 많은 것을 이해하는 것일까?

만화 대사가 나오기 전부터 뱉어내고, 

가사는 몰라도 여러 노래의 음을 흥얼거리는 

두 살 안 된 아기의 모습에 놀라고 있다. 



아기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아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내일은 나를 위해 보낼 것이다.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이를 맡기지 못해서, 월요일에 문 연 곳이 없어 오랫동안 받지 못한 마사지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건강해져야지.












별아, 엄마는 그래도... 

사진첩에 네 사진이 엄마 사진보다 만 배는 많은 지금이 행복해. 감사해. 

너처럼 곱고 행복한 아기가 내 아기라서 정말 행복해. 






덧글

  • 쇠밥그릇 2018/03/05 08:49 # 답글

    엄마 건강이 최고. 어여 몸고장 수리하시길.
  • Jl나 2018/03/07 17:20 #

    감사해요 이제 좀 살아났어요 ^^
  • 더카니지 2018/03/05 09:32 # 답글

    지나님 얼른 나으세요ㅠㅠ
  • Jl나 2018/03/07 17:20 #

    나아가요 고마워요 ^^
  • 2018/03/05 12: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07 17: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blue snow 2018/03/05 13:11 # 답글

    ㅠㅠ아프셔서 어떻게해요.. 얼른 나으시길..!!!
  • Jl나 2018/03/07 17:22 #

    ㅎㅎㅎ 신난다 뚜루뚜루뚜뚜뚜~ 틀어놓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아침이에요 ㅋㅋㅋ
  • 2018/03/05 13: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3/07 17: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3/05 16: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7 17:29 #

    ㅎㅎ 네 많이 이해해요. 그 느낌 저도 처음엔 참 이상했는데 그조차 익숙해지더군요. 그러다 다른 아기에게 젖을 준 경험이 있는데 (여기 사람들에겐 완전 컬처 쇼 to the 크 ㅋㅋㅋ) 그땐 정~~~~~~~말 이상했어요 ㅠㅠㅠㅠㅠㅠ ㅋㅋㅋㅋ ㅠㅠㅠㅠ 아기도 저도 ㅋㅋㅋ ㅠㅠㅠㅠ

    이제 하나 키우면서 느낀 건 모유고 분유고 뭐시고 각자의 상황과 여건과 건강과 최선은 모두 다르다. 아기 성격도 만 가지가 넘는다... 누가 누구에게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였어요. 세 아이를 모유로 키운 시누도 넷째 때는 그 기간을 줄이더라고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기 너무 힘들고, 막내가 엄마 젖을 찾는 스타일도 아니고 해서.

    전 어제 저 혼자 서운해허 쪼끔 울었지만 ㅋㅋ 그래도 아이고 이렇게 떼게 되네요. 때가 온 것 같아요.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 2018/03/05 16: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7 17:31 #

    아유 이 글 읽고 감동 받았어요. 감사해요. 마음만 받을게요. 저 이제 센 약 먹고 빠른 속도로 나아지고 있어요! *ㅂ*
    다음에 더 예쁜 거 있음 나눠받기로 해요~ 감사합니다!!
  • 이지리트 2018/03/05 20:29 # 답글

    저도 어릴때 편도선염으로 입원해서 그 괴로움 잘압니다.
    에딘이 안아픈게 중요하지만 지나님이 안아픈것도 중요합니다.
    얼른 건강회복하세요.
  • Jl나 2018/03/07 17:32 #

    아니 우리 의사 스앰님이 약 먹고 안 나으면 큰 병원 가서 입원해야 합니다 해서 ㅎㅎㅎ 했더니
    아니 지나 농담이 아니라 수술해야 할 수도 있어서 !!! 했어요. ㅋㅋㅋ
    이틀 약 먹고 기절하고 약 먹고 기절하고 했더니 이제 목소리 나와요. ㅋㅋㅋ 감사해요~
  • 2018/03/05 23: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7 17:33 #

    월요일에 진짜 호강했어요. 근데 약 기운 때문에 집에 못 올 뻔 했어요 ㅋㅋㅋ 감사합니다!!
  • 2018/03/06 20: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7 17:34 #

    그렇게 무시무시한 일이...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분이 많으셔서 놀라고 감사하고 그랬어요.
    비밀님이야말로 어디어디 자꾸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 2018/03/07 06:4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8/03/07 17:35 #

    아따... 이제 답글 다 달았나... ㅋㅋㅋ
    호... 홍삼... 너무 쓰던데... 냄새만 맡아도...
    이제 많이 나았어. 아따 오랜만에 죽을 뻔 했네 ㅋㅋㅋ
  • 2018/03/08 01:08 # 삭제 답글

    니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겨~
    넌 다르겠지만.. 친구 입장은 그렇다 ㅎ
    건강해라잉
  • Jl나 2018/03/08 01:52 #

    우리 효녀가 ㅠㅠㅠㅠ 엄마가 아픈 거 아는지 젖을 안 찾네 ㅠㅠㅠㅠ 착하고 불쌍해라~~
  • santalinus 2018/04/27 12:25 # 답글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셨겠죠? 그나저나 별이는 점점 예뻐지네요. ^^
  • Jl나 2018/04/27 16:42 #

    그럼요 고마워요 ^^ 별이는 매일 자라요.
    산탈리누스님 애들 상대하느라 힘드시죠? 힘 내세요. 오해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 santalinus 2018/04/27 18:55 #

    감사합니다. 이렇게 악의적인 오해와 루머의 중심에 선 게 참 오랜만이어서 맘이 힘들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순간도 흘러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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