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없다? 멍하니 창 밖을 보다가




유럽 사는 동생의 장문의 이메일을 보고 답장을 할까 하다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한국 살 때 궁금했으므로)

여기에 쓴다. 


한국에 있을 때, 그러니까 여러 가지 문제로 굉장한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고 있었던 무렵 

캐나다에 이민 간 사촌언니에게 "언니, 다른 나라에서 사는 건 어때? 어떤 기분이야?"

를 물었던 적이 있다. 


뭔가 뽀샤시하고 근사한 답을 기대했던 나는 

"...그냥 사는 거야... 하하..."

라는 언니의 대답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흔히들 그런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다고... 



그러나 다르게 살아보고 그것을 느끼는 것과 

막연히 그러리라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고 

기회의 유무에 따라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한다. 


떼부자가 되어 본 사람이 번 돈을 흥청망청 쓰며 실컷 즐긴 후에 

가난한 사람, 아니 자신보다 훨씬 돈이 적은 사람들에게 "아껴 쓰라"라고 

충고하는 사람으로 돌아서는 것을 볼 때 상당한 환멸감을 느끼게 된다. 



다시 입을 떼기 싫을 정도로 괴로운 (물론 행복도 있었지만) 20대를 보낸 나로서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느니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다느니 하는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지금 내가 누리는 평화와 안정과 행복은 

유럽으로 이사를 온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게 보일 것이다. 



사랑하는 좋은 사람과 가정을 이뤘고, 참 아름다운 곳에 집을 얻었고, 

시댁 식구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건강하고 예쁜 딸도 얻었고, 인터넷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라고,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갈등과 노력, 고생이 있었다는 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번역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기까지도 최소 2년간의 싸움이 있었다.

일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두고 기싸움이라고 하는 

소모전을 벌인 것도 수십 번은 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일해봤으나 정작 고향에선 커리어를 쌓은 적이 없는 

남편이 지금의 직장을 얻기까지의 노력과 고생도 말하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러고도 직업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 같은 걸 보면 내 짝이지만 참 고민이 많겠다 싶다. 

마흔까지 인생에서 뭘 하며 먹고 살고 싶은지를 찾고 싶단다. 

나 역시 마흔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지 모르겠다. 

또 원점은 아니더라도 또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 또는 도전 또는 기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것, 

만만치 않다. 

어떤 외국어에 능숙해지는 것엔 그만큼의 애정이 필요하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안 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의 

부차적인 이유가 붙기도 하지만 그 나랏말을 유창하게 할 정도의 노력과 시간을 

들이는 데엔 대단한 애정이 필요하다. 


한국이, 아니 세계가 미국화되는 것엔 상당히 불만이 많으면서도

영어를 이만큼 한 것은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 미디어에 보였던 그들의 문화가 

더 행복하거나 풍요로워 보였기 때문에, 더 합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에였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어디인가?

어떤 나라가 가장 살기 좋은가?

바로 정답이 떠오르는가?



아름답고 이성적이고 대다수 국민이 잘 사는 나라를 꼽으라면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정도일까?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이름 모를 섬일까?

아님 내가 상당히 만족하며 살고 있는 아일랜드일까?

미국이긴 하나 미국 본토보다 훨씬 여유롭고 아름답다는 하와이일까?


스위스의 안정은 모든 것에 중립노선을 취한 것이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스위스의 절경은 인정해야 할만큼 아름답고 주변 국가에 비해 매우 청결하다. 

스위스인들... 상당히 오래 일한다.

이런 평화를 방해받길 원하지 않으므로 이민을 수용하지 않는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 빠진 것은 요즘 힘들어 보여서) 등 북유럽 국가들도 

물론 살기 좋다고 소문났지만 난 이 나라들의 기나긴 + 깜깜한 + 추운 겨울을 견딜 자신 없다.


아일랜드는 심심한 거 못 참는 사람들은 절대 살 수 없다. 

비 오면 우울해지는 사람도 절대 살 수 없다. 


태평양 섬이나 하와이는 안 가 봐서 모른다. 

그런데 관광업이나 호텔에 점령당하지 않은 아름다운 섬은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지 않은가?

상업적으로 물들지 않았으면 "매우 불편"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 



나에게 유토피아, 이상 국가를 묻는다면 

1. 한국의 음식과 편의

2. 일본의 고요함과 예절

3. 스위스의 절경과 청결함

4. 아일랜드의 초록과 친절함 

5. 독일의 근면함과 정직 + 맥주 ㅋㅋ

6. 스웨덴의 순수함과 자연

7. 미국의 유머 감각

8. 중국의 땅 크기

9. 중남미의 흥과 여유

10. 스페인의 날씨

11. 이탈리아 투스카니 시골의 시에스타


.......이런 것들을 다 섞어놔야 한다...

(끝이 안 나려고 해서 멈추기로 한다.)


그러니까 한 나라로는 천국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결국 지구 전체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가까워진다는 거대한 결론에 이른다. 


딸이 의자에서 탈출하려 하므로 여기서 멈춤. 

동생에게 하려던 말이 더 생각나면 이어 쓰기로 한다. 


 



덧글

  • Jl나 2016/11/01 18:24 #

    육아일기:

    별빛 에딘 (7개월세)

    - 낯가림이라기 보다는 내가 안 보이면 슬픈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맘은 그렇게 돌연 슬픈 표정 짓는 아기는 처음 본다 하셨다.)
    - 어제부터 음식을 딱 잡고 씹어먹기 시작했다. (먹이면 곤란하다는 짭짤한 짜가 게맛살)
    - 그제 아랫니 두 개가 솟아나는 걸 발견했다. (근데 매우 즐겁고 해맑은 표정으로 가슴을 막 깨문다.)
    - 오늘 왼쪽 눈에 속쌍거풀... 꺼풀... 커플...;;; (악!!!)이 생긴 걸 발견했다.
    - 오른쪽에도 가늘게 보이려고 한다. (난 십대 되어서야 생겼는데 벌써... 남편은 이런 거 못 알아봄. 쌍꺼풀이 뭔지도 모름.)
    - 털;;(머리, 속눈썹, 눈썹)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난 완전 검은색인데)

    <결론>

    점점 남편을 닮아가고 있다...(...)
  • 이지리트 2016/11/01 20:42 #

    에딘이가 점점 그윽해져가는군요.
  • Jl나 2016/11/01 22:19 #

    ㅎㅎㅎㅎ 네... 그윽해져가요 ㅎㅎㅎ
  • YUMYUM 2016/11/02 00:21 #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건 자기 형편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죠....
  • Jl나 2016/11/02 00:59 #

    그쵸... 그래도 돈만 많으면 어디가 제일 좋다는 아닌 것 같아요.
    돈 많아도 정부나 사람을 믿을 수 없다면...
  • 윤윤 2016/11/02 01:32 #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귀에 AT필드를 장착하신 분들은 튕겨서 못들으시더라구요. ㅠㅠ
  • Jl나 2016/11/02 03:23 #

    AT필드 이미지 검색해 봄 ㅋㅋㅋㅋㅋㅋ 아... ㅎㅎㅎㅎㅎ 네 그렇지요 ㅎㅎㅎ
  • 함파 2016/11/03 20:39 # 삭제

    밖에서볼때나 좋아보이죠
    근면 정직도 아주 잘 포장된것이더라구요
    뭐 사람 지역 차이는 있겠고
    "비교적" 근면 정직도 일종의 근면 정직은 될수는 있으니...
    백만가지 이성적인 이유는 제쳐두고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없고 사람 싫어하는데 딱히 이유없듯
    사는곳도 호불호는 어쩔수 없는거같아요. 그냥 느낌이 딱 그런것을.
  • Jl나 2016/11/03 22:15 #

    포장조차 못하는 곳은 그럼 어떻겠니...
    여기 저기 다녀보니 한국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싶어.
    지금 날씨나 네 상황이나 그런 것이 더 기운 빠지게 할 수도 있으니
    좀 느긋하게 지내면서 내년엔 뭐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 Jl나 2016/11/04 01:44 #

    좀 요지가 아니긴 하지만...
    "그냥 싫어"는 없더라. 그냥 싫긴 뭐가 그냥 싫어. 그냥 그 이유를 설명하기 귀찮은 게 그냥 싫어야.
    자기랑 닮아서 싫거나 자기랑 너무 달라서 싫거나... 하여간 인간은 지멋대로라고.
  • Jl나 2016/11/04 01:51 #

    그리고 보는 시선에 따라 만족도의 차이도 아주 커.

    만약 내가 아일랜드의 단점을 계~~~~~~~~~속 봤더라면,
    지금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야.

    뭐랄까... 어느 곳, 어느 사람에게서라도 어찌 되었건 장점을 파악하는 것이
    억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되면 삶이 좀 쉬워져. 쉽게 만족하니까.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끊임없이 찾다 점을 찍지 못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생각해.
    넌 완벽하니? 난 얼마나 모순적이니? 난 얼마나 부족하니? 우리나라는 얼마나 부족하니?

    결론은 어디/누구에서나 장점을 찾지 않으면
    네 삶은 어디에서도/누구와도 행복하기 어려워.
  • 2016/11/05 16:0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11/14 00: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RiKa-★ 2016/11/06 10:44 #

    정말 그래요. 일본에서 사는건 어때? 라고 일본인도 한국 지인도 묻지만..
    사람 사는게 다 똑같죠~ 라고 밖에(...)
  • Jl나 2016/11/14 00:22 #

    좀 더 편리한 건 맞고 여유는 덜하고 그런 것 같아요. 한국 일본은요... 그래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하는 행위 자체는 비슷하죠잉 ㅎㅎ
  • 고냉이래요 2016/11/13 02:37 #

    너무 오래 새글 업뎃이 없어서 근황 물으러 왔어요.
    오겡끼데스~~~~~까~~~~~~~? @.@
    러브레터 인용하면 구세대라던데.. ㅋ 이제 저도 슬슬 구세대로 접어드나 봅니다
  • Jl나 2016/11/14 00:23 #

    그런가 휴가 중이라 그랬네... ㅍㅎㅎㅎ 한 일주일 있다 돌아올겨. 우리 고냉 심심했구나?
  • Korna 2016/11/15 12:48 # 삭제

    굉장히 공감 가는 글이에요~

    그리고 어느 곳에 살든 가장 중요한 건 이 나라가 가진 장점에 얼만큼 고마워하며 산다는 거 아닐까요?

    저는 미국에 사는데 여기는 주 마다 다른 나라처럼 다르거든요...

    저는 만족하고 지내고, 누군가 이민을 고민한다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느냐 없느냐 라고...

    저는 만족하나 만족하지 못하고 사는 많은 분들을 알고 있거든요
  • Jl나 2016/11/20 19:44 #

    사람이 좋아하는 건 다 다르니까 그런 것 같아요.
    한국은 좀 덜 복잡하면 훨씬 살기 좋을텐데 싶었어요.

    그런 복작거림과 분주함, 다양함, 편리함, 시끌벅적함에 아주 익숙해진,
    그런 걸 포기하기 싫은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면 너무 심심할 테지요...
  • 따뜻한 허스키 2016/11/19 12:31 #

    이완 맥그리거씨 아일랜드에서 인기많나여??ㅎㅎ제 남편이 열심히 경기봐여ㅎㅎ
  • Jl나 2016/11/20 19:45 #

    ㅋㅋㅋ 아니 이 맥락 없는 엉뚱함은 뭡니까 ㅋㅋㅋㅋㅋ 여기선 "유안"에 더 가깝게 발음하더라고요.
    스코틀랜드 사람이지요. 아일랜드 사람들도 좋아해요. 남편은 영화랑 여행 다큐 보고 좋아하지요.
  • 따뜻한 허스키 2016/11/20 19:56 #

    아! 코너 맥그리거 ufc 선수 말한거였어요!!! 뭔가 아일랜드 남자의 강려크함이 느껴져요!ㅎㅎ이름이 헷갈려서...ㅡ.ㅡ 댓글보고 읭? 하다 다시 검색해봤어요ㅎㅎ
  • Jl나 2016/11/20 20:24 #

    아! ㅎㅎㅎㅎ 그렇군요. 물어볼게요. 권투 선수가 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ㅎㅎㅎ
  • Jl나 2016/11/20 21:52 #

    그냥 아이리시니까 좋아한답니다 ㅍㅎㅎㅎㅎ 티비를 자주 보지 않아서요 ㅎㅎㅎ
    던서방은 아마도 안녕하세요를 더 자주 볼 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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