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에게 자리를 준 레이디 그레고리 지구 여행





레이디라는 말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숙녀"도 이상하고 "부인"이라는 말도 "누군가의 처"라는 말처럼 들려 이상하다. 


그 옛날 격식을 갖춰 지위와 부를 가진 여성들을 

그리 불렀으니 그냥 "레이디"라고 하겠다. 






예이츠의 공원이라고 불린다는 것, 

그녀가 문인들이 이곳에서 글을 쓸 수 있게 후원했다는 사실 외엔 

그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안내서에서 그녀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녀도 작가였다. 

극작가, 민속학자, 극단의 공동창립자... 


옛날의 "극작가(Dramatist)"라는 말은 

오늘날의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란 말과 왜 이리 달리 들릴까?



1879년, 그녀는 레이디 그레고리가 되었다. 

27세에 처를 먼저 보낸 63세 윌리엄 그레고리 경과 결혼하였고, 

40세가 되던 해에 남편을 먼저 보내게 되었다.

저택과 405 헥타르(1,000 에이커)의 숲과 강이 있는 Coole의 주인이 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회고록을 편집하는 일로 글쓰기를 시작했으며, 

이후 민속 전통, 동화, 언어 부흥에 관한 글을 썼다. 

아일랜드 신화의 인물인 쿠퀄렌(Cú Chulainn)의 전설을 모아 

출판한 것이 눈에 띈다.


20세기 들어 Coole(현재 Coole Park)은 아일랜드 문학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존 밀링턴 싱, 조지 러셀, 시인이자 화가인 더글라스 하이드, 

게일릭 리그의 창립자, 아일랜드 대통령, 조지 버나드 쇼, 화가 어거스터스 존,

잭 B. 예이츠 등이 이곳에 초대되었다 한다. 








특히 W.B. 예이츠는 1896년 처음으로 쿨을 방문한 이후 

20회가 넘는 여름을 이곳에서 보내며 글을 썼다고 한다.   



 







오늘날의 쿨은 대중에게 열린 공원이다. 

이렇게 근처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산책을 하시고, 강아지들을 산책시키고, 

아이들과 함께 유모차를 모는 가족들,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렇게 멋진 숲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복 받았단 생각이 들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예이츠의 흔적이 남아있다. 







숲의 나뭇가지를 쌓아 만든 어떤 예술가의 작품 






붉은 문 너머로 들어가면 정원이 있다. 






해시계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다음에 계속...)






덧글

  • 2016/09/16 02:35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6/09/16 15:28 #

    ㅎㅎㅎ 아니 절대 못 알아봤네... 사람 눈은 어찌 이런가 몰라.

    추석이라니... 그것도 네가 알려주니 알겠다.
    헉... 어제였어... 던서방만 달 봤대. 어제 달이 예뻤대. (당연히 그도 추석달인 줄 모르고 봄)
    난 에딘 젖 먹이고 있었는데 ㅎㅎㅎ

    지금 사진 찍어놨다며 자랑스레 보여주는데 붉은 달이었네... 해달.

    소금 설탕 넣으면 안 된다니 안 넣긴 하는데 나중엔 조금 간 해야지.
    옛날 엄마, 할무이들은 막 육수 내서 온갖 재료(육해공 다 ㅋㅋㅋ) 넣어 푹푹 끓여 먹이고 그러셨대.
    요즘처럼 아기들 앨러지 두려워 하고 뭐 안 되고 안 되고 하는 시절이 아니니 과감했음 ㅋㅋㅋ
    물론 훨씬 맛있었겠지 ㅎㅎㅎ

    소원 꼭 이뤄지길 내가 또 빌게.
    고마워~ 나도 갑자기 억울해지니 추석전이라도 하나 부쳐야겠어.
  • 2016/09/18 18:34 # 삭제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Jl나 2016/09/19 05:22 #

    그래요? 반가워요. 오랜 인연은 참 반가워요. ^^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