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할머니 (4) 과거가 괴로운 것이냐 하면




단 2년도 되지 않은 일인데 그 때 뽑아든 책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히 사진도 남긴 것 같은데 어느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쓰인 책이었고, 작가의 일기 같은 것이었다. 


이미 죽은 자의 일기장을 들춰본다는 것, 그리고 그걸 누군가 출판했다는 건 

작가 본인이 기뻐할 일인지 괴로워할 일인지 모르겠다. 

<인간은 언젠가 보여주기 위해 일기를 쓰는가?> 

라는 자문에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다만 '혼자 집에 있는데 예쁘게 치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여주고 싶어서, 들려주고 싶어서, 나아지고 싶어서, 만족하고 싶어서, 만족하지 못해서 

인간은 만든다고 생각한다.

혼자 동굴 속에 있는 인간은 발전하지 못한다.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를 흘끗 쳐다보고는 이내 각자 읽던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 틈에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어쩐지 지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 
 

'이 책방에 너무 오래 있어 미안한 걸' 싶은 즈음 일어나려고 했다. 

아주 천천히 기차역까지 걸어가야지 했다. 


근데 어디선가 갑자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등장하시더니 

2층 전체에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로

"티 타임~~~~!! 티 타임~~~~~~~~!!!"

을 외치셔서 깜짝 놀랐다. 

손에 뭔가를 주렁주렁 들고 1층에서 올라오신 듯 했다. 


'티 타임이 뭐지? 뭔지 몰라도 뭔가를 하나 보지? 그럼 자리를 비켜줘야겠지?'를 순식간에 생각하며

급히 주섬주섬 가방을 싸고 있었더니 할머니 왈,

"전부 자리에 앉아요. 저기 밖에 있는 사람들도 들어와. 티 타임이라니까!"

하셔서 '하하... 뭐지' 하며 다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할머니는 활기찬 목소리로 여기저기 사람들을 불러오시더니 자리에 앉히셨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들은 이미 제자리에 앉아있는 듯 했고,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데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이끌리듯 앉았다. 

바닥에도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스무 명 정도가 모였다. 


할머니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시더니 홍차를 만드셨다. 

"오늘은 잔이 좀 모자라네. 그래도 뭐... 괜찮아요. 잔은 더 가져오면 되고 

내 차는 원래 진하니까 물을 더 부어 오래 우려내면 돼.

............가끔은 그게 통하기도 한다니까."

하셔서 사람들이 웃었다. 


셰익스피어 & 컴퍼니 책방과 인연이 깊은 분인 듯 했다. 

오랫동안 매주 일요일마다 이 티타임을 가지셨다 했다. 글을 쓰는 분이셨다.

이 서점을 처음 만든 분과도 어떤 깊은 관계가 있다고도 소개하셨는데 놓쳤다. 

액센트로 보아 영국인이신 듯 했다.


할머니는 손수 만든 브라우니와 쿠키, 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셨다.

왜 그런 일을 하시는지 궁금했지만 차차 알게 될 것 같아 그냥 

"아... 감사합니다..." 하며 넙죽 잘 받아먹었다. 


할머니 곁엔 새까만 개 한 마리가 있었다. 털에 윤기가 흐르는 예쁜 개였다.

근데 녀석이 자꾸 낑낑대고 울었다. 아마 자기에게도 쿠키를 달라며 우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콜렛!!!! 너 자꾸 시끄럽게 할래!!!"

하며 강아지에게 호통을 치셨다. 그래도 강아지가 울자 

"너 자꾸 이러면 쫓아낸다!!!! 앉아!!!"

하며 더 큰 소리로 혼내셨다. 


그래도 말을 듣다 안 듣다 하는 콜렛 때문에 할머니는 좀 정신이 없으셨고 

"콜렛!!!! 나 아주 화났어!!!! 너 자꾸 이러면 진짜 쫓아낸다!!!!"

하며 강아지에게 엄한 표정을 보이다 돌연 우리 쪽을 돌아보더니 아주 인자한 표정으로 

"전 이 녀석을 아주 사랑한답니다."

해서 또 사람들이 웃었다.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티 타임'이란 일종의 '문학 모임' 같은 것이었다.

느긋한 일요일 오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차를 나누며 자기가 쓴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파리에 살거나 들른 사람들이 영국 책방에서 영어로 시를 읊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문학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 일을 하시는 듯 했다. 

입장료 같은 걸 받는 일도 아니었다. 

그냥 본인이 원하셔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차와 음식을 나눠주셨다. 
   
그곳에 오래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언제 파리에 올지 모르는데... 멋진 행운 같았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셨다. 

여러 국가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영어가 서툰 사람도 있었고, 유창한 사람도 있었고, 

프랑스인도 있었고, 스웨덴인도 있었고, 영국인, 스페인인, 인도인, 캐나다인도 있었다.

동양인은 나 혼자 뿐이었다. 













 


 
 



덧글

  • 미남 2015/11/03 23:28 # 답글

    책방보다는 개인서재같은 느낌이네요 분위기 맘에 들어요.

    강아지 눈이 참 이쁘네요
  • Jl나 2015/11/04 00:08 #

    작고 아늑하고 오래되고 참 예뻤어요.
    유명한 것만 흠이에요. ㅎㅎㅎ (이유가 있어서 유명해졌으니 어쩔 수 없죠...)
  • 솔다 2015/11/03 23:54 # 답글

    우와 대형견도 책방에, 차 마시는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다니! 그것보다 책방에서 티타임이라니 정말 소설같고 동화같고 이국적이고. 하트 뿅뿅입니다.
  • Jl나 2015/11/04 00:09 #

    ㅎㅎㅎ 귀여워요 ㅎㅎㅎ
    즐거웠어요. 그 틈에 끼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 섬유린스 2015/11/04 14:42 # 답글

    언어를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ㅂ; 원래는 저도 언어 전공하면 실용언어 중심으로 파는데 졸시과목때문에 체질에 안 맞게 불문학 시를 필사하고 외우고 그러느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ㅂ; 목적 없이 배우는 거라 동기부여가 잘 안 되던 차에 이런 글을 보면 역시 언어를 해서 새 세계가 열리는 건 사실이구나 싶어지네요 ㅠㅂㅠ 노래는 좋아하면서도 여전히 문학의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자리도 있구나 하는 걸 알아갑니다;ㅂ;
  • Jl나 2015/11/04 16:14 #

    저도 불어 공부, 책으로 하는 건 너무 어렵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영어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그랬듯 음악이나 영화를 봐야겠다 싶어요.
    샹송 잘 부르고 싶다... 정도로 목표를 ㅎㅎㅎ (누구 노래가 좋은가요? +ㅂ+)

    지금은 시험을 쳐야 하니까.. ;ㅁ;;; 괴로우시겠지만
    나중엔 하고 싶고 알고 싶고 좋아하는 부분으로 그 문화를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
  • 섬유린스 2015/11/05 09:23 #

    격려 감사합니다 ;ㅂ; 저도 일어는 노래로 배우며 회화도 많이 입에 붙고 어휘도 많이 배웠는데 영어불어를 그렇게 못 해서 아쉽네요 ㅠㅂㅠ 영어처럼 안 되려고 불어 한 건데 또다시(...) 영어도 수능영어 벗어나서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됐듯 아마 불어도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ㅂ; 감사합니다

    샹송은...음...제가 딱 정해두고 듣는 가수가 없어서... MIKA 앨범(The Origin of Love)은 일부러 프렌치 에디션으로 사서 거기 수록곡 들었구요,
    나머지는 ecouterradioenligne.com 이라는 온라인 라디오 사이트에서 RTL2를 듣는데 거기서 흘러나온 노래를 가사 검색해서 듣네요 ;ㅂ; 교수님께 추천받은 곡이나...
    Lara fabian의 Tout
    Hélène의 Pense à moi (이건 가사 어렵지 않더라구요*ㅁ*)
    Corson의 Raise me up(Je respire encore)
    Nana Mouskouri의 Plasir d'amour
    Saez의 jeune et con(이건 좀 빨라요ㅠㅠ)
    Jena lee의 éternise-moi

    그리고 여기에다 디즈니 곡들 프랑스어판 찾아서 듣기도 하구요 *ㅁ* 곡명 뒤에 프렌치만 붙이고 lyrics 혹은 paroles 이라고 치면 알아서 영상을 내어주니 참 좋습니다(...

    지나님이랑 음악 취향이 같을 거 같지는 않지만요 ㅠㅂㅠ 일단 저는 이렇습니다 ;ㅂ; 
  • Jl나 2015/11/05 16:09 #

    악 고마워요!!! 맨날 샹송만 쳤더니... 너~~~무 옛날곡들만 나와서... 킁... 하고 있었는데...;;;
    디즈니 송 ㅎㅎㅎ 네... 그걸로 처음 공부했지요. MIKA도 좋아하고 너무 시끄러운 음악 아니면 거의 좋아하니 좋을 거예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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